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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프린츠
클래식한 이탤리언 베이스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서초 내추럴 와인바
립프린츠만큼 손님을 생각하는 업장도 없을 것이다.
몇 번 드나들다 보면 지난번 방문 때는 뭘 마셨는지 기억하고 그에 맞춰 와인을 추천해줄 정도니까.
음식 사진을 찍을 때면 슬쩍 와서 휴대폰 조명을 켜주기도 하고, 늦게까지 머물면 혹시 휴대폰 충전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먼저 묻기도 한다.
상호인 ‘lip printz’는 와인을 마시고 와인잔에 남는 입술 자국을 뜻하는 말. 그만큼 와인에 진심인 곳으로, 좋은 글라스를 구비하고 있기에 제법 비싼 와인을 시켜도 제대로 기분을 낼 수 있다.
좋은 재료로 만든 클래식한 이탤리언 베이스의 요리는 대부분의 와인에 두루 잘 어울린다.
시그너처 메뉴는 이탈리아식 올리브튀김. 한우를 갈아 올리브 속을 채워 튀겨낸 요리로, 오늘은 다른 걸 시켜볼까 싶다가도 어떤 와인을 맛보든 꼭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라 주문하게 되고 마는 메뉴다.
개인적으로 최고라 꼽는 메뉴는 멍게 버터 파스타다.
팬데믹 때 격주로 방문해주는 손님에게 새로운 메뉴를 내고자 만들게 된 메뉴로, 내장을 손질한 멍게를 버터에 갈아 장처럼 만들어 파스타 면에 볶고 연어알과 허브를 같이 낸다.
호불호가 갈릴 요리지만 바다 내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극호’일 메뉴. 누구와 함께 가도 좋겠지만 특히 애주가 지인들과 방문하기를 권한다. 물론 혼자 가도 좋다.
사장님과 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를 테니까.
낮 시간대에 다양한 내추럴 와인을 글라스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낮추럴데이’를 종종 운영하니, 와인 리스트가 궁금하다면 미리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고 이용해볼 것.
립프린츠는 마치 심야 카페에 온 듯 편안한 분위기와 스태프의 세심한 배려가 일품인 내추럴 와인 바다. 사진 속 음식은 콜드컷, 트러플 비네거와 레몬 커드를 곁들인 리코타 비트 라비올리. 인물은 이완범 대표.
립프린츠서울 서초구 반포대로13길 32 1층
랑빠스81
유럽의 오래된 선술집 분위기를 가진 프렌치 샤퀴테리 전문점
랑빠스81은 이 기사가 제시하는 주제의 ‘오래된 정답’이다. 누군가에게는 좀 뻔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확실하달까. 유럽의 오래된 선술집 같은 분위기에 공간이 넓어 5명이 넘는 인원도 편하게 식사와 술을 즐길 수 있다.
다양한 범위와 식재를 활용한 음식들이 항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주류의 가격대가 착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직원들의 호쾌한 응대도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요인.
그러나 아무런 고민 없이 랑빠스81을 내놓은 이유는 이 모든 이유에 더해 실제로 내가 지인들과 자주 찾았다는 통계적 확신 때문이다.
이곳의 정체성은 ‘샤퀴테리 전문점’이지만 너무 묵직한 메뉴만 있지는 않을까,
반대로 뻔한 소시지 요리만 있는 건 아닐까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익숙할 것 같은 메뉴에는 렌틸콩 요리나 하리사 소스 등을 곁들여 변주를 주고, 어니언 수프나 고트 치즈가 들어간 샐러드, 철마다 조금씩 바뀌는 디저트 등을 통해 다양한 구성을 만들어내니까. 입맛 다른 대여섯 명이 가도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 주문해야 할 메뉴는 오리고기 스프레드인 리예트다.
차려입고 가야 하는 정중한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메뉴를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것도 아주 정통의 맛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양고기를 못 먹는다는 사람도 뭔지 모르고 맛깔 나게 먹는 호불호 없는 메뉴, 양고기 소시지 메르케즈도 이 가게에서 지나치면 아쉬운 명물이다.
요리에 잘 어울리는 와인도 갖추고 있지만 특히 스페인 맥주 에스트레야 담 이네디트가 음식들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단체다 보니 처음에는 맥주로 시작해, 흥이 오른 후 와인을 마시는 것도 좋겠다.
랑빠스 81은 ‘프렌치 샤퀴테리 전문 선술집’을 표방하는 곳이다. 부숑(bouchon)답게 가공육을 기반으로 한 음식을 꽤 저렴한 가격대에 내놓지만 그 내실은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다. 사진 속 음식은 오리고기 스프레드인 리예트.
랑빠스81 서울 마포구 동교로30길 17-1
오늘파포
4주 숙성한 포항 재래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는 곳
오늘파포는 도무지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위치할 법하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추계예술대 부근, 아현동에서도 가장 높고 대로에서 가장 먼 곳인 그곳 일대에는 실제로 대부분 기사식당뿐이다.
작년에 포항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긴 이 레스토랑은 마치 번화하고 혼잡한 곳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마을버스 종점이 있는 언덕배기에 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두꺼운 철문을 밀고 들어서면 의외로 꽤 넓고 시원한 공간이 펼쳐진다.
메뉴의 중심축을 이루는 건 포항 지역의 재래돼지와 해산물이다.
통상의 레스토랑에서 식재료가 요리사의 실력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 역할을 한다면 오늘파포에서는 재료 자체를 빛내기 위해 조리 방법을 선택하는 듯한 느낌이다.
재래돼지 파테는 다른 돼지에서 느끼기 힘든 농축된 육향을 정통 프렌치 조리법으로 재현했다.
한 입 먹으면 자연스럽게 잔에 와인을 따르게 되는 맛의 밀도를 지녔달까.
와인 리스트 가격대는 10만원대 이하가 대부분인데, 마셔보면 와인의 개성과 퍼포먼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주인장의 배려와 고민이 엿보이는 리스트다.
직접 알감자를 으깨서 빚고 재래돼지 삼겹살과 크림소스를 곁들인 뇨키도 추천 메뉴다.
단순한 조합이지만 감자의 고소한 맛이 크림, 재래돼지의 맛과 일맥상통하며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반건조 생선 등을 쓴 해산물 스파게티는 마치 이탈리아 어촌 마을에 온 듯한 착각까지 들게 한다.
좀처럼 가기 쉽지 않은 서울의 구석에 있지만, 오히려 그곳에 사람들과 모여 앉으면 ‘너와 나’가 아닌 ‘우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주방 인원이 두 명뿐이라 손님이 많으면 주문이 밀릴 수 있다.
웬만하면 처음부터 먹을 메뉴를 모두 시키고 시작하는 게 팁이라면 팁이다.
오늘파포는 송파구 삼전동 ‘오늘 저녘 셰프와 포항 ‘비스트로 파포’셰프가 의기투합해 차린 곳으로, ‘안주가 좋은 와인 바’를 표방한다. 4주 숙성한 포항 재래돼지고기를 활용한 메뉴가 중심으로, 사진 속 음식은 재래돼지 파테, 뇨키 파스타, 해산물 스파게티며, 인물은 셰프입니다
오늘파포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로 96 1층
토키바야마
스모 선수 출신 셰프가 운영하는 창코 요리 전문점
이 조명, 온도, 습도….” 오랜만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남주혁의 ‘조온습’ 드립을 보고 깔깔 웃다가 문득 생각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고였다. 어라? 이것은 위대한 건축가 페터 춤토어가 그토록 예찬한 ‘분위기(atmosphere)’를 함축한 말이 아닌가 온도, 습도, 빛, 소리, 개인의 경험 등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요소가 ‘드래곤볼’의 원기옥처럼 한데 모여 특정 공간에 알 수 없는 힘을 불어넣는다는 그 유명한 건축 미학 말이다.
매화꽃이 만발한 정선 시골집에 꼬마전구가 다다닥 켜졌을 때 남주혁이 말하고 싶었던 건 바로 그 분위기, 오직 그 장소에만 배어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이었을 테다.
정선 매화골이 아닌 대도시 서울, 녹사평 언덕에 숨듯 자리한 작은 술집 ‘토키바야마’에서 나는 그 흔치 않은 아름다움을 느낀다.
별다른 특징 없이 청결한 실내, 소리 없이 빙긋 웃는 일본인 셰프, 숙련된 직원의 적절한 환대와 은은하게 흐르는 일본 가요,
다치에 앉아 나지막이 대화하는 단골들까지. 이 모든 요소가 부드럽게 맞물려 토키바야마의 고유한 ‘조온습’을 완성한다. 그 ‘조온습’은 놀랍게도 수년째 아무 기복이 없다.
마치 가게의 공기를 세심하게 조율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가게 한편에 아늑한 룸이 마련되어 있고, 위치도 강남과 강북 중간이라 여럿이 갈 술집을 고민할 때 늘 반가운 해답이 되어주는 곳. ‘알쓰’ 멤버들도 식사 대용으로 먹기 좋은 창코 나베, 웬만한 이자카야에서는 맛보기 힘든 네기토로토로리, 튀김 장인인 셰프의 솜씨를 느낄 수 있는 참마튀김 등이 단체 모임 분위기를 쭉쭉 끌어올린다.
‘전직 스모 선수인 일본인 요리사가 스모 선수들이 즐겨 먹는 창코 나베를 만든다’는 가게의 정체성 또한 일행과의 대화에 물꼬를 터주는 스페셜한 화젯거리다.
생선 지느러미를 띄운 노르스름한 히레 사케를 시켜볼 것. 추천 메뉴에 있는 사케 4종도 고르게 맛있다.
토키바야마는 스모 선수 출신인 셰프 하루키 요시하루가 운영하는 창코 요리(스모 선수들이 먹는 요리) 전문점으로, 일본풍 주점들이 아무리 구현하려 애써도 흉내 낼 수 없는 ‘나즈카시이(懷かしい, 정겹고 그리운)’한 분위기가 강점이다.
사진 속 인물은 하루키 요시하루 오너 셰프. 음식은 토리니쿠 창코나베와 네기토로토로리.
토키바야마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40다길 2 그린빌라트
세탁소였던 건물을 개조한 옥수동의 내추럴 와인 페어링 바
최근에 주워 들은 뜻밖의 사실 하나. 조선시대 밥상은 1인 1상, 즉 독상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다들 알고 계셨는지
40대가 되고, 또래들과 와인 바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어쩌면 그 시절의 독상 DNA가 내게도 전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여럿이 둘러앉아 서빙 집게를 주고받으며 음식을 공평하게 덜어 먹는 일이 점점 버겁게 느껴지는 탓이다.
그렇다고 매번 코스 요리를 주문할 형편은 못 되고, 차라리 좀 캐주얼한 식당이면 좋겠는데 애들 장난 같은 음식은 또 싫고, 분위기는 힙한데 와인 리스트는 진지했으면 좋겠고…. 이런 덧셈 뺄셈 끝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옥수동의 내추럴 와인 페어링 바 ‘어게인스트 보더스 센터(Against Borders Center, 이하 ABC)’다.
미국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인 포틀랜드의 바이브를 지향하는 곳답게 ABC의 주방은 손님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오픈 키친, 이런 폼 잡는 주방이 아니고 그냥 가정집 부엌처럼 소박한 공간인데 주방이 작다 보니 나오는 음식도 타파스처럼 작은 접시 요리가 대부분이다. 단품 요리라고 하기엔 좀 작고 사이드 메뉴라고 하기엔 다소 푸짐한 안주들이 마치 반찬처럼, 똑같은 브랜드의 접시에 미니멀하게 담겨 나온다.
‘Against Borders’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장르에도 경계가 없어 세비체와 치킨윙, 떡볶이와 살치살 스테이크가 무람없이 한 식탁에 오르고, 부라타 치즈처럼 흔한 아이템에는 홍시 소스 같은 유쾌한 ‘킥’이 더해진다.
경험상 ABC는 무조건 여럿이 가야 한다.
그래야 1만~2만원대의 창의적인 안주들을 5첩 반상, 7첩 반상으로 차려놓고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 간판도 없다시피 자리한 곳이라 아는 사람만 찾아온다는 점도 ‘킬포’. “이런 곳은 어떻게 찾았어?” 감탄하는 친구들 앞에서 어깨만 으쓱할 때의 그 흡족함이란.
ABC에서 포틀랜드 와인을 안 마시면 유죄. 주인장은 맞은편 상가 건물에 포틀랜드 와인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보틀 숍 ‘p.o.t.’를 따로 운영할 정도로 와인에 진심인 사람이니 꼭 추천을 부탁할 것.
어게인스트 보더스 센터는 세탁소였던 건물을 개조한 내추럴 와인 바로, 강미 대표의 농담 섞인 표현에 따르면 ‘내추럴 와인 바계의 안주마을’을 표방한다. 그만큼 편안하고, 동시에 모든 것이 범상치 않다. 사진 속 음식은 묵은지 매운 떡볶이, 꽈리고추튀김, 주꾸미 적채 샐러드.
against borders center 서울 성동구 독서당로 188 1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