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행

사찰 여행지

502301 2024. 3. 13. 19:33
728x90
반응형

보탑사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우신 길 641 길찾기

찾아가는길
자가용: 진천IC - 약 500M - 안골삼거리에서 좌회전 - 약 2Km - 신성사거리에서 우회전 - 약 800M - 성석사거리에서 직진(왼쪽으로 굽은 도로) - 약 1.3Km - 군청사거리(금수정사우나)에서 우회전 - 약 4.2Km - 사석삼거리에서 우회전 - 약 1.5Km - 보탑사삼거리(초원휴게소)에서 가운데 길 - 6Km - 보탑사.시내버스 : 진천 시외버스터미널 - 연곡리행 버스 승차.
전화번호
043-533-0206
설명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483번지에 있는 사찰이다.
충청북도 진천군 보탑사  자락에 있는 사찰로, 1996년 고려시대 절터로 전해지는 곳에 비구니스님인 지광·묘순·능현스님이 창건하였다.
황룡사 9층목탑을 모델로 만든 3층목탑의 높이는 42.71m로, 상륜부(9.99m)까지 더하면 총 높이가 무려 52.7m에 이르는데 이는 14층 아파트와 맞먹는 높이이다. 목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29개이다. 강원도산 소나무를 자재로 하여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지어졌다 한다.
1층은 대웅전(199㎡), 2층은 법보전(166㎡), 3층은 미륵전(136㎡)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전에는 사방불(동방 약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이 배치되어 있으며, 법보전에는 윤장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고, 한글법화경을 총 9t의 돌판에 새겨 놓았다. 미륵전에는 화려한 금동 보개 아래에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2층과 3층 외부에는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보탑사에는 그밖에 장수왕릉(장수총)을 재현해 만든 지장전, 너와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의 산신각, 부처가 500명의 비구들에게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해 만든 영산전, 와불 열반적정상을 모신 적조전, 법종각·법고전·불유각·삼소실 등의 건축물이 조성되어 있다. 경내에는 보물 제404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석비인‘진천 연곡리 석비’도 있다.

봉선사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

봉선사 길찾기

찾아가는길
의정부에서 포천 방향 43번 국도로 8.2 km 진행, 축석령 검문소에서 우회전, 314번 지방도를 타고 가면 임업 시험장, 광릉수목원을 지나 광릉 입구 도착
설명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969년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하였다. 그 후 1469년(예종 1) 정희왕후 윤씨가 광릉의 세조를 추모하여 89칸으로 중창하고 봉선사라고 하였다.
1551년(명종 6)에는, 교종의 수사찰(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시를 치르기도 하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여러 번 수축했으나, 1951년 6 ·25전쟁 때 다시 법당과 함께 14동 150칸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화엄이 56년 범종각을, 1961~1963년에 운하당을 세우고, 1969년에는 주지 운허가 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에는 월운이 영각을 세웠다.
절 종각에 보존되어 있는 동종은 조선 전기의 것으로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등사

주소
인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길찾기
찾아가는길
신촌 ~ 전등사신촌역 4번 출구 직진 후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 M6117 버스 또는 영등포에서 출발하는 60-3,8000번 버스 승차 후 → 김포복합환승센터에서 하차 → 60-2, 60-5, 70, 700-1번으로 환승 → 전등사 동문 또는 온수리 하차-홍대입구역 ~ 전등사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강화운수 2000번 승차 -> 전등사 동문 하차-검단,검암역 ~ 전등사검단사거리역에서 700-1번 또는 검암역에서 700-2번(1번 출구 정면 길건너 정류장), 70번(2번 출구 길건너 고가 위 정류장) 승차 -> 전등사 동문 또는 남문 하차-김포공항 ~ 전등사김포공항 내 국내선 1층 10번 승차장에서 60-5번 승차 -> 전등사 동문 하차 (하루 8회 운행)
영업시간
매일 08:00 - 18:30 하절기 이용시간
매일 08:30 - 18:00 동절기 이용시간

가격표
문화재관람료   무료
주차료-소형  2,000원
주차료-대형  8,000원

용문사

주소
경기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용문사 길찾기
찾아가는길
6번국도를 타고 신원리, 양평, 봉성을 지나 마룡삼거리에서 좌회전, 331번지방도로를 타고 덕촌, 신점을 지나면 용문사 주차장이 보임.

전화번호
031-773-379

가격표
관람료 무료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인 봉선사(奉先寺)에 속해 있다. 913년(신덕왕 2) 대경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때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다. 1395년(태조 4) 조안화상이 중창하였으며,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원찰로 삼으면서 보전을 다시 지었다. 1457년(세조 3) 왕명으로 중수하는 등 중 ·개수를 거듭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 때 전국에서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될 당시 용문산과 용문사는 양평일대 의병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당시 권득수 의병장이 용문사에 병기와 식량을 비축해두고 항일활동을 펼치며 일제에게 타격을 입혔다. 
반격에 나선 일본군 보병 25연대 9중대와 용문사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데 1907년(융희 1) 8월 24일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러 사찰의 대부분 전각들이 소실되었다.
당시 주지 스님이었던 취운(翠雲)이 사찰을 소규모로 재건하여 유지해 오던 중 그마저 6 ·25전쟁 때 파괴되어 3칸의 대웅전과 관음전 ·산령각(山靈閣) ·종각 ·요사(寮舍) 등만 남게 되었다. 1982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절에서 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조선 전기의 정지국사(正智國師)부도 및 정지국사탑비가 있다. 부도와 탑비는 함께 보물 제5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경내에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이는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다

월정사

주소
강원 평창군 오대산로 374-8 월정사 길찾기
찾아가는길
버스: 서울 동서울터미널 - 진부시외버스터미널 - 월정사 정류장 - 월정사. 자가용: 1. 서울중부고속 도로 - 영동고속도로 - 진부IC - 월정사

전화번호
033-339-6800

가격표
어른 5,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500원
어른 단체  4,000원
청소년 단체 1,000원
어린이 단체  400원

 

설명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이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창건 유래에는,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온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신)을 친견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또한 민지가 쓴 《봉안사리 개건사암 제일조사 전기》에 인용한 《대산본기》에는 이때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이며, 자장은 훗날 다시 8척(尺)의 방(房)을 짓고 7일 동안 머물렀다고도 전하고 있어 이 절은 643년 자장이 건립했다고 볼 수 있다. 자장은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백산 정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신의(信義) 선사가 암자를 건립하여 머물며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한동안은 머무는 승려가 없어 황폐해 졌다가 유연(有緣)이 머물면서 암자를 건립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3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일(而一)이 중창하였고 1833년에 또다시 불이나 전소되었다. 1844년 영담(瀛潭), 정암(淨庵)이 사찰을 중건하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후퇴 때 사찰의 대부분이 전소되었으나 1964년 이후 탄허(呑虛), 만화(萬和), 현해(玄海) 등이 중건하였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신앙되고 있는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史書)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가 있었고, 1464년(세조 10)에 말사인 상원사를 중수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고자 시주물과 함께 보내 온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보관되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 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이 있다

편의
주차, 남/녀 화장실 구분
용주사

주소
경기 화성시 송산동 187-2 길찾기
찾아가는길
서울과 오산을 잇는 1번 국도의 태안읍 병점육교에서 서쪽으로 약1.5km 진행, 안용중학교를 지나 수원대학교 방향으로 1.5km 진행하면 길우측에 보임

전화번호
031-234-0040
입장료  무료

설명
일제강점기 때는 31본산(本山)의 하나였는데, 이곳에는 원래 854년(신라 문성왕 16)에 세운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다. 952년(고려 광종 3)에 병란으로 소실된 것을 조선 제22대 정조(正祖)가 부친 장헌세자의 능인 현륭원을 화산으로 옮긴 후, 1790년 갈양사 자리에 능사(陵寺)로서 용주사를 세우고 부친의 명복을 빌었다.
당시 이 사찰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서 시주 8만 7천 냥을 거두어 보경으로 하여금 4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게 하였는데,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고 용주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사(創寺)와 동시에 팔로도승원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하였으며, 보경에게는 도총섭의 칭호를 주어 이 절을 주재하게 하였다.
경내에는 이 절의 전신인 갈양사의 유물인 7층의 석조사리탑과 6개의 돌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는 천보루(天保樓)가 있는데, 그 안에 들어서면 대웅보전과 석가삼존불이 있다. 그 뒤쪽의 후불탱화역시 석가와 여러 보살 및 10대 제자상들인데, 이를 김홍도의 그림이라고도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이 밖에 당우로는 시방칠등각·호성전·독성각(獨聖閣)·명부전등이 있다. 주요문화재로는 국보 제120호인 용주사 범종이 있으며, 정조가 이 절을 창건할 때 효심에서 발원, 보경을 시켜 제작한 《불설부모은중경판》이 있다.

 

반응형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나클랜드 수목원.  (0) 2024.03.14
울진 성류굴  (0) 2024.03.14
2024년 국내 이색 여행지  (0) 2024.03.13
국내 온천 여행지  (0) 2024.03.13
청주 열대 식물원  (0) 2024.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