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0) 인생
1.
연금 들어오는 날이다. 그러나 오후 6시가 되면 다 빠져 나가고 없다.
은퇴한 지 9년, 늘 이랬다. 내 나이 70, 잔고 제로 인생 50년째다.
2.
어제 아침,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일을 보는데 갑자기 해괴망칙한 생각이 들게 뭐람!
만약 내가 지금 죽으면, 장례치를 돈, 있나?’ 갑자기 든 생각 ... 음, 팩트 앞에서 정직해지자. ... ‘없다’... 그런 답이 나오자 갑자기 영육이 공황상태가 되었다.
볼 일 볼 생각도 잊은 채 멍 때리기에 들어갔다.
3.
그 날 저녁 5시. 친구 둘과 함께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잔을 놓고 앉았다.
화장실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면서 물었다. ‘느그들 지금 당장 죽으면 장례 치를 돈, 있나?‘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답했다.
.
‘없다’
.
당연했다. 나를 포함, 세 사람 다 통장 잔고가 제로인 친구들이다.
4.
한 친구는 금융기관 부행장 출신. 받은 퇴직금 2/3를 유학간 아들 밑에 들이부었다.
1/3은 주식 투자하다가 날렸다. 10년 가까이 한 유학 생활을 한 아들, 원하던 학위도 못 받고 그냥 빈 손으로 돌아 왔다.
돈만 10억 가까이 날렸다.
5.
아들 사주를 보니 그때 그 나이 때에 해외 안 나갔더라면 목숨이 위태로운 사주. 공부가 목적이 아니라 살기 위해 해외로 피했던 아들이었다.
아들 살리느라 큰 돈이 들어갔던 것. 지금 이 친구가 가진 건 2억원도 안 되는 오래된 아파트 한 채와 매달 받는 선낱꼽지 밖에 안 되는 국민연금이 전부다.
6.
다른 한 친구는 사업 쫀쫀하게 한 탓으로 한 40년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았다.
5년 전 무슨 일로 몽땅 다 털어 먹었다. 지금은 자기 이름 앞으로 땡전 한 푼 없다.
부동산도 없다. 밥값 소주 값은 자기 아내 카드 긁어 먹고 마신다.
긁으면 얼마 긁었다고 아내 폰에 실시간으로 뜬다. 호강시켜준 세월 40년, 힘들게 한 시간 5년. 그러나 소용없다.
현재가 중요하다.
집에 들어가면 가당찮게 바가지 긁힌다.
부부가 밥도 따로 먹는다.
7.
그날 술자리에는 없었던, 친구가 한 사람 더 있다.
이 친구도 잔고 제로다. 나처럼 공직생활 한 친구다.
이 친구가 가진 것은 산만디에 있는, 부산에서 가장 싼 아파트 한 채와 매달 받는 연금이 전부다.
그나마 그 아파트 값 절반은 대출 받았는데 몇 년 전부터 금리가 올라 이자 갚느라 정신이 없다.
8.
사업하다 말아 먹은 친구 뺀 나머지,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자식이 모두 제 몫 제대로 못하고 산다는 점이다.
나이 40 넘은 아들들 모두 아직 장가 못 들었다.
앞으로도 들지 못 들지 알 수 없다. 제대로 된 직장이 없는 탓이다.
9.
자식 넋두리는 그만하자. 다 제 팔자 소관이다.
중요한 것은 70 나이에 잔고 제로를 극복해낼 길이 안 보인다는 점. 그래도 매달 나오는 연금 있으니 걱정 없다?
물론 당장 걱정은 없다. 잔고가 늘 제로인 것이 문제일 뿐.
10.
그러려니 하고 살면 그렇게 살 수도 있다.
아무리 팔자 소관이라 하지만 나나 내 친구들이나 70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팔자가 비슷한 할배들끼리 만나 소주잔 기울이며 신세 한탄 할 줄 몰랐다.
유유상종도 참 뭐~하다.
11.
사업하다 쫄딱 말아 먹는 것은 그 세계에서는 다반사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은 직장생활을 바르고 정직하게 한 것이 바로 잔고가 제로가 된 이유다.
직장 생활하면서 부모 유산이나 처가 덕 안 보는데도 노후에 잘 사는 것은 부정부패, 투기, 로또당첨 아니고는 답이 없다. 물론 부부 맞벌이 같은 예외는 있겠지만.
12.
세 사람은 곁눈질 할 줄 몰랐고, 나라에서 주는 錄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 70에 남은 것은 (상대적이긴 하지만) 노인 빈곤이라는 멍에다.
100세 시대로 치면 아직 30년이 남았는데 말이다.
13.
돌이켜 보니 빈곤은 노후의 일만이 아니다.
사실, 나의 경우 평생 그렇게 살아 왔었다.
부엉이처럼 뭔가를 모아 놓고 살았던 기억이 없다.
늘 쪼들렸고 전전긍긍했었다.
예컨대 조상 제삿날 다가오는 것은 공포에 가까웠다.
고위 간부로 근무할 때조차도 그랬다.
때문에 나의 유언 중 하나가 나 죽고 난 뒤 나의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거다. 자식 골병 들이는 방법 중 하나가 제사다.
14.
파지 주으러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한 30십년 국가든 사회든 주춧돌 아니면 기둥이 되어 일해 온 결과 치고는 참 안쓰럽다.
이렇게 잔고가 제로가 될 정도로, 자신의 장례비 한 푼 모아두기 어려울 정도로 내 인생을 잘 못 살았거나, 공직자로서 나태하게 살지는 않았다.
15.
내 탓인가, 남의 탓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날 모임에 참석 안한 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푸념을 늘어 놓았다. ‘이렇게 계속 살 필요가 있느냐?’,
‘70 살았으면 많이 산 것 아니냐?‘고. 그 친구 답이 이외였다.
‘내일 죽을 지라도, 장례비 한 푼 모아 놓지 못했을 지언정, 오늘 열심히 살겠다’. 그렇다.
내 친구 중에 스피老子가 있다.
16.
며칠 전 암 보험을 해약했다.
내가 암 걸리면 암 진단비라도 받자면서 내 의사와는 반대로 소람에 의해 우격다짐으로 들었던 보험이다.
이번에는 내가 우격다짐으로 고집을 피워 해약했다. ‘암 걸리면 미련없이 가겠다’는 내 황소고집에 소람이 졌다.
17.
선친께서는 71살에 왔던 곳으로 가셨다.
나도 내년이면 71살이다. 살아 보니 70古來稀가 분명하다.
100세 시대에 말도 안 된 소리로 들리겠지만, 古來稀 고개를 넘었는데도 더 살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제1의 老慾이라고 본다.
내 기준이 그렇다.
17-1.
핑계가 있다면 하늘이 불러주지 않는데 나 스스로 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잔고 제로인 노후를 10년, 20년, 하늘이 그냥 내버려 둔다면 아직 내가 못다 갚은 빚이 있어 그런다고 볼 수밖에.
18.
못다 갚은 그 빚을 내 눈물과 땀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
노후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어디 없나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사는 것, 이게 과연 바람직하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19.
그날 만난 그 두 친구, 잔고 제로인 두 친구. 만나 헤어질 때까지 주구장창 한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사업 이야기, 투자 이야기였다
몇 兆 단위의 사업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런 이야기 그 두 친구로부터 들은 지 꽤 오래 되었다.
그 중 한 친구는 죽을 때 마지막 단말마가 ‘돈!’이라고 할 친구로 보였다.
20.
‘돈!’ 누군가 말했다.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그러나 안 되는 일이 있다.
잠시라도, 잔고 제로인 나의 통장을 돈으로 채우는 일이다.
안 될 일을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한 가지, 하늘이 어서 나를 데리러 오기를 바라는 것. 갈 준비는 다 되어 있다.
나이 70에 이 준비 안 되어 있으면 老慾의 함정을 피하기 어렵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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